1.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2. 1956년 6월 교파를 초월하여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미소함을 본받는 삶을 실천하도록 강렬한 충동과 이끄심을 받은 자매들이 모여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3. 당시 김준호 레오 선생님께서는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생을 살고픈 마음으로 다리 밑 거지천막에서 그들을 형제 삼아 함께 살면서 점점 작음의 영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4. 그후 ‘성녀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게 되면서 성 프란치스코와 공통된 작음의 영성을 발견하여 작음의 신비로 거듭나게 됩니다.
  5. 이때부터 하느님 섭리에 의한 작은 영혼들 즉 자매들이 모여들고, 함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광주시 북구 화암동에 ‘무등원’을 마련하여 결핵으로 죽어가는 환우들을 친형제․자매처럼 돌보며 영혼의 완덕에 이르는 길을
  6. 현실화 된 삶에서 걷게 됩니다.
  7. 1970년에는 차츰 가톨릭 신앙 안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자매들이 모여들면서 함께 성무일도와 규칙생활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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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976년 공동체는 내외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되어 작은 자매들은 성탄 자선 모금을 하러 성당문을 두드리게 되고, 그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셨던 조철현 비오 신부님께서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여 자선을 하게된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금을 하러 온 그 자매들에게 “수녀원에 갈 맘이 있느냐”며 넌지시 수녀원 입회를 권유하시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돌보아야 할 가족들을 버릴 수는 없다’며 조용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감명을 받은 신부님께서는 그들 안에 현존해 계시는 예수님을 따라 저절로 그 공동체에 찾아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직접 그 공동체를 방문한 신부님께서는 ‘작음의 영성’을 살고 있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인 자매들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세례를 받아 성사생활로 신망애를 키우며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10. 조철현 비오 신부님과 김준호 레오 선생님께서는 이 자매들이 주님 손길을 더욱 가까이 느끼며 교회의 일치 및 죽는 날까지 동정의 삶을 뿌리내릴 수 있도록 수도회 창설과 회헌, 회칙의 인준을 추진하기로 협의하였고, 1981년‘에는 무등원’이란 공동체명을 소화 데레사 영성에 따라 ‘소화자매원’으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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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여년 전 조 비오 신부님께서는 당시 광주대교구장이셨던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님께 수도회 창설에 대해 넌지시 청을 드리고, 수년동안 잊고 있었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그 원의를 드러내셨습니다. 즉 조철현 비오 신부님과 김준호 레오 선생님의 영혼에 강한 성령의 움직임을 일으키시어 1988년 조철현 비오 신부님께서는 밖으로는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님께 간구하시기를 수차례 거듭하시고, 안으로는 자매들에게 수도생활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교육을 실시하셨습니다. 1996년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 수련소를 신축하였으며, 수녀회 창설에 따른 제반 준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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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 안에 섬김과 나눔의 생활을 통하여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봉사하고 가난과 겸손으로 꾸준히 기도 생활을 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신 후 마침내 1999년 1월 18일 ‘예수의 소화 수녀회 창설을 허락하시고 회헌과 회칙을 인준해 주었습니다.

  3. 1999년 3월 1일 수련착복식을 시작으로 예수 성심 시녀회의 정복례 루이안나 수녀의 지도아래 정규 수련이 시작되었으며, 2000년12월 28일 같은 수도회 김종순 시메온 수녀를 원장수녀로 모시게 되어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수녀회로써의 면모를 가추게 되었습니다.

본 수녀회는 교구수도회로서 2000년 대희년에 광주 대교구 제8대 교구장으로 취임하신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2001년 1월 18일 제1회 6명의 수녀가 첫서원을 하였고, 2002년 12월9일에는

제2회 5명의 수녀가 첫 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