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는 따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따뜻합니다. 생명은 따뜻합니다. 우주 만물이 사랑에 녹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따뜻하다는 말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예수님 자비의 사랑에 녹아났습니다. 성녀께서는 수녀가 될 자격이 없고 예수님 편에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전능이 성녀를 수녀가 되게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어여삐 보시고 자비의 사랑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소화 데레사 성녀를 보고 슬퍼하셨고, 그리고 너무 불쌍해서 품에 안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점이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성입니다. 

이 두 성인의 말씀은 직접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교훈이며 깨우침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 중에서 아이 때 사건 “난 다 골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전 생애의 축소판입니다.

믿음은 선물이고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저는 어려서 하던 모양으로 ‘하느님이 전능하신 데 당신 때문에 괴로움을 받는 것은 무섭지 않고

오직 겁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좋고 생명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오직 한 가지 걱정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화 데레사 성녀가 두려워하신 덕입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내 마음대로 한 것 말고는 그 밖의 모두 선택하오니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받아 주시라고 부탁하신 영성을 배워야겠습니다. 

시련은 죽을 때까지 입니다. 몸을 가졌다는 것이 시련입니다. 시련이 많으면 영적인 재산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다고 합시다.

자기 의지가 너무 강해 순종이 안 됩니다.

이것이 시련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순종하면 편한데 순종이 안 됩니다. 시련 가운데 있을 때 영혼이 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의 고통을 받으셨으니 여러분도 같은 각오로 정신을 무장하십시오. 육체의 고통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는 인연이 없습니다. "(1 베드로 4,1)

매일 작아져야 합니다. 매일 자기를 부정하십시오. 완전히 자기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완전히 자신을 바꾸어야 합니다. 

“당신의 인자를 노래하나이다. 당신은 어려서부터 나를 가르치셨고, 나는 지금까지 당신 기묘함을 전하나이다. 제게 있어서 나이 많은 때라는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 주님이시여! 당신은 제가 바라던 것 이상의 것을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원장님, 당신 딸이 나이 많아서보다는 젊어서 죽는 것을 더 큰 은혜로 생각하는 줄로 생각지 마십시오.

제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성녀께 본받아야 할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걸 기뻐하실까? 그것만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무거우면 어떻게 안고 가겠습니까?

아가서에 있는 신부와 같이 제 모든 재화를 다 바치고도 아무것도 바치지 않은 것 같이 여겨야 합니다. ‘다 드렸는데 아무것도 안 드린 것 같이 부끄럽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종의 심정입니다. 일을 다 했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것같이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 뿐입니다. 제 생명을 바쳤는데도 아무것도 바치지 않은 것 같이 부끄럽습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랑할수록 부끄럽고 목이 마릅니다. 사랑만이 제가 탐내는 보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이 길이란 거룩한 도가니로 인도하는 한 갈래 길입니다.”(자서전 246) 그 길을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가셨고, 글라라 성녀께서 가셨으며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은 아버지 품에서 아무 겁 없이 잠이 드는 어린아이의 ‘탁 믿는’ 그 마음입니다.”(자서전 247) 완전히 자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먼지 하나라도 자기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가볍게 안고 가십니다. 겸손한 영혼은 하느님이 품어 주십니다. 불쌍히 보시고 대신 우시고,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죄를 용서하시고 대신 죽으십니다. 너무 불쌍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