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데레사 성녀가 했던 말씀입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왕국을 가지신 이가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얼굴에 피가 묻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얼굴을 쳐다보면 고개가 숙어집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을 때 눈물뿐입니다. 너무 비참하고, 너무 매 맞고, 멸시받으시고,

침이 있고, 피가 있고, 가시관이 있고, 처절한 아픔이 있습니다.

! 예수님의 얼굴과 같이 내 얼굴도 모든 사람의 눈에 가려지고 이 세상 사람은

아무도 나를 몰라보는 것이(이사 53,3~4 참조) 제 원이었습니다.

저는 괴로움을 당하고 잊히기가 간절한 원이었습니다.” 이 성녀의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쏘시게는 사람이 볼 때 눈에 띄지 않고 아무 데도 쓸데가 없습니다. 재목이라야 갖다 쓰지 부스러기를 누가 갔다가 쓰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소화 데레사가 그걸 흠모하였고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이 그것입니다.

이 원은 하느님께서 계시고 우리에게 주신 보물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모습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불쌍하지만, 내적으로는 사랑이 충만하고 행복한 영성입니다.

복음삼덕을 상식적으로는 잘 압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욕망 덩어리이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몸 안에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 여섯 치도 못 되는 속에 욕심이 큽니다. 우주를 다 주어도 마음에 안 찹니다.

이것을 통제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자기 정()을 못 박으십시오. 성경은 단순하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갈라 5,24).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순결합니다. 영과 육이 순결합니다. 정이라는 욕심을 죽입니다.

교황 요한 23세의 일기를 보면 성인은 정이 죽은 것이 아니고 성령이 울타리가 되시고 지켜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성령이 떠나시면 곧 곰, 사자, 늑대가 뛰어나옵니다. 죽은 다음에 성인이지 죽기 전에는 성인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덕이 높은 사람도 몸이 있는 동안에는 속()에 갇혀 있습니다.

욕망이 통제만 되어 있지 죽은 것은 아닙니다.” 라는 글이 나옵니다.

예수께 속한 사람은 육체를 그 정과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가난은 물질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고, 물질세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덕입니다.

천하를 다 주어도 욕심이 다 차지 않습니다. 몸 안에 있는 욕심을 죽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순결을 지키는 것과 욕망을 죽이는 것은 성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순명을 서원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죽이는 것입니다.

덕이 없으니까 순명이 안되는 게 아니고, 덕이 높고 유명해지고 성인 말을 들어도

자유의지는 그렇게 죽이기가 어렵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됩니다.

내가 함께한다.”(요한 14,17; 21; 23 참조) 성령이 오셔야 관상기도가 됩니다.

자기 의지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아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프란치스코 성인과 소화 데레사 성녀이십니다

                                                                                                                                                      < 글 : 김준호 레오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