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 사람 (루카 10,25~37)


꽃을 심었다 하더라도 꽃이 필 때까지 말이 없습니다. 참사랑은 말이 없습니다. 또 왼손이 하고도 오른손이 모를 때, 그것이 절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제자이니까 마땅히 스승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해서 사랑이 안 됩니다. 사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

그것이 완덕이고 사랑의 완성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같이 너도 그렇게 하라.”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우리 신분은 순수한 자연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위치가 같습니다.

무명한 사람으로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부스러기로서 우주에 인류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성 교회에 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이 말씀이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참사랑은 절대로 양보를 못 합니다. 사랑은 앞서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습니다. 또 사랑같이 행복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면 행복하고 사랑 못 하면 불행합니다. 사랑에는 보수가 없습니다. 사랑 자체가 보수입니다. 그것이 영광이고 행복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찬물 한 그릇을 떠 주었더라도 자랑이 섞이면 위선이고, 더러운 것입니다. 참 자비는 함이 없이 하는 것입니다.

함이 없이 하는 사람이 성인이며,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가시기 전, 결론으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마태오 25,31~46) 있습니다. 최후 심판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고, 남기고 싶은 유언이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인격, 덕의 완성입니다.

덕을 완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7)


항상 표준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한쪽만 한다는 것이 아니고, 양쪽에서 다 하는 것입니다.

한쪽은 사랑하고 한쪽은 사랑을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잃어버린 자식들이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발견이고 아버지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 형성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하는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훈련받고 있습니다.

                                                                                     

                                                                                             (김준호 레오 선생님 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