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들의 어머니 (김천자 세라피나어머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김천자 세라피나어머니

(혼돈을 넘어 도약으로 ~~~)

 

김천자 세라피나는 1958년경부터 언니인 김은자 마리아에게서 동광원 이현필 선생을 소개받은 후,
이현필 선생의 말씀과 위력에 감화를 받아 동광원을 자주 찾게 되었다.
한 가정의 아내이며 4남매의 어머니인 그는 교직에 있는 남편과 사회적으로 자신이 받았던 달란트가 (노래, 편물, 양재, 요리, 예절~)
어느 한 가지도 빠짐없이 다재다능하였다. 어머니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어린 자녀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가슴 깊이 묻고 희생으로 바치며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적 삶을 선택하였다. 그는 덕과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지도력이 뛰어났다.  

김천자 세라피나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르8,34)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자신은 물론 봉사자들에게도 청빈 생활과 사랑의 공동체를 위하여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는 말씀으로 늘 충고와 격려를 하였다.  

특별히 그는 이현필 선생의 선종 후에는 김준호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며 봉사자들을 지도하며

예수의 소화수녀회 창설을 위한 기초를 놓기 위해 영적. 물적인 협력자로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정신을 본받고자 무등자활원을 소화자매원으로 개명하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 유지를 받들어 198141일 그대로 이루어졌다

김천자 세라피나는 1977년 무등자활원 초대원장으로 가장 어려웠던 혼돈의 시기에 살림을 맡아 총 관리하면서 시설이 빚더미에 넘어갈 위기에 놓이자

수피아 여고 스승이셨던 조아라 회장과 동창 친구들과 함께 시설유지이사회를 구성하였으며 음악회를 열고 후원자를 개발하여 위기에서 구하였다

그는 환우들에게나 봉사자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가 되어 주었으며 자신들의 고충과 어려움 때문에 찾아오면 언제든지 마음을 나누며 위로해 주고

평화를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노숙인 이었던 발달장애인 변재갑 형제와 장순자 자매는 매일 방 문앞에 와서 어린아이처럼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힘들게 하여도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그 뜻을 다 받아 주었다

또한 무등자활원 초대원장 시절 전북 장수에 지지리 분원광주시 북구 화암동에 무등산 분원을 설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특별히 무등자활원의 안정과 자립생활을 위해 혼신을 다하다가 지병인 고혈압으로 쓰러져 1979319 선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