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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자매원 태동기
소화수녀회
등록일 : 2021.05.08
20:48:52
소화자매원 태동기
(1946~1956)
“
두 줄기의 빛
,
가난과 작음
”
소화자매원의 설립자 김준호
(
레오
)(1924~2010)
선생은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1944
년 일본군에 징병되어 갔다가 해방직후 한국에 돌아와
,
1946
년 해남 수동교회에서 이현필
(1911-1964)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
이 만남은 선생이 평생 영육의 고난을 당하는 이들과 함께 사는 계기가 된다
.
“
꽃을 꺾지 마세요
.”
우주가 빠개지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
“
꽃은 그냥 두고 보세요
.”
우주가 회복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
(
이현필 선생의 설교 중에서
)
이현필 선생은 국화꽃 한 송이에서 생명을 느꼈고
,
꽃을 인격화시켜 온 우주와 동격화 한 것이다
.
김준호선생의 삶에 비추인 첫 줄기의 빛은
22
세 되던
1946
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
완덕의거울
’(
하천풍언 역
)
을 통해서 피조물에 대한 절대 자비심에 눈뜨게 된다
.
김준호 선생은
한국의 프란치스코
,
'
맨발의성자
'
이현필선생
(1911~1964)
의
영적지도를 받으며
,
광주천 다리 밑에서
10
여 년간 걸인들과 생활하던 중 골결핵을 얻게 되어 제중병원에 이현필 선생과 입원하게 된다
.
두 번째 줄기의 빛은
32
세 되던
1956
년 제중병원에서 만난 결핵환우 전건식 형제를 통해
성녀 소화데레사의 시
“
사랑을 살다
”
를 알게 되면서부터 가난과 병도 성스럽다는 것을 깨닫는다
.
또한 폐결핵 환우들의 아픔을
(6
개월 입원 후 강제 퇴원 됨
)
알게 되고
,
전건식 형제의 마지막 소원인
“
퇴원 후 부모님이 안 계시고 조카들도 어려서
..
결핵균에 전염 될까 집에 갈 수 없으니 시냇물이 흐르는 물가에 막을 쳐 주십시오
.
그곳에서 제 손으로 물을 떠 마시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다가 마지막 임종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그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걸인 소년
2
명과 제
2
수원지
(
화순
)
쪽으로 무등산을 오르게 된 것이 오늘의 소화자매원 시초가 된다
.
저는 약속했습니다
.
“
형제는 떠났어도 다른 형제들을 위해 무등산 산속에 들어가 생수가 나는 물가에 막을 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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